공부방 - 삽질하자, 지구에 구멍이 날때까지!!!
지금까지 경제학의 역사는 구라의 역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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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비판적 실재론이 하나의 독립적인 이론적 기획으로 자리잡은 것은 역사 유물론이 독립적인 이론적 기획이자 맑스주의의 방법론적 전제로 자리잡은 것과 무관하지 않다. 비판적 실재론은 역사 유물론의 이론적 전제들 - 토대에 조응하는 상부구조, 구조의 행위와 행위자에 대한 선차성-이 지니는 결정론적 문제들에 대한 철학적 해명, 혹은 알튀세르의 구조주의와 E.P. 톰슨의 행위주의의 양극단 사이에 놓여있는 역사 유물론의 위기에 대한 대안으로써 이론적 지위를 차지한다.
2. 이러한 비판적 실재론이 역사 유물론의 방법론적 전제로써 접근되는 한 Chodos (Historical Materialism, 3(1), 1998)에게서 발견되듯이 비판적 실재론이 맑스주의 조직론의 이론적 전제로까지 확대되는 것은 불가피하다. 이에대한 Joseph (ibid.)의 비판, '비판적 실재론이 거대한 기획으로 변질되어 맑스주의 영역 내부에서 확장됨으로써 맑스주의 자체를 잠식했다'는 비판은 따라서 비판적 실재론이 아니라 역사 유물론의 기획 자체에 대한 질문으로 수용할 필요가 있다.
3. Bhascar는 구조와 행위의 관계를 각각의 이중성(Duality)을 통해 설명한다. 즉, 구조란 행위하는 인간을 통해, 그 활동을 통해 존재하며, 동시에 그러한 활동을 강제하고 가능하게 만든다. Bhascar는 이를 구조의 이중성이라 정의한다. 다른 한편, 행위의 이중성이란 공통의 혹은 보편의 행위로 환원될 수 없는 개인적 차원의 현존과 다른 한편 이러한 개인성이 사회적 맥락 속에서 구성된다는 이중성을 의미한다. 이러한 구조와 행위의 각각의 이중성(Dualism)은 구조와 행위의 관계에서 서로 환원될 수 없는 독립적 영역을 지님과 동시에 "행위를 결정하는 구조의 우선성"이라는 맑스주의 유물론적 전제와 함께 "행위에 의해 변혁되는 구조"라는 동태적 운동의 가능성과 전략의 필요성, 이 양자를 모두 충족시키는 것으로 보인다.
4. 이러한 비판적 실재론의 설명은 그 기능적 유용성과 무관하게 철학적 이원론의 형태를 취한다. "서로에게로 환원될 수 없는" 각각의 실재론적 전제, 즉 이원론을 전제로 양자의 상호 연관에 의한 다이나믹과 구조 변동의 가능성을 고찰하는 것은 분명 유익하다. 그러나 맑스가 "포이에르바하에 관한 테제"에서 근대철학의 인식론적 문제설정과 틀을 넘어서는데 있어 '실천 혹은 행위'의 의미를 강조한 것은 인식과 대상의 각각의 실체를 인정하고 양자 사이의 관계설정을 재구성한 것이 아니라 인식론적 문제 설정 자체를 해체한 것임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즉, 맑스에게있어 "실천"이란 인식과 실체의 관계설정이라는 철학적 의미에 앞서 "변혁"이라는 원초적 문제에 근거한다. 제 4테제에서 "환경의 변화와 인간 활동의 변화 혹은 자기 변화와의 일치는 오직 혁명적 실천으로서만 파악될 수 있고 합리적으로 이해될 수 있다 (The coincidence of the changing of circumstances and of human activity or self-change can be conceived and rationally understood only as revolutionary practice)에서 의미하는 것은 이를통해 의식과 실체 사이의 양자의 구성적 전제로써의 실천을 의미하기에 앞서 혁명적 실천을 전제해야하는 계급의 존재, 그 계급의 요구 혹은 계급의 목적으로써 혁명적 실천의 존재이다.
5. 프롤레타리아의 존재, 그 계급의식의 존재로부터 철학적 진리의 기반을 확보하는 루카치는 질문을 전제로써 활용했다는 점에서 근본적으로 오류이며, 그 자체로써 철학적 주의주의(Voluntarism)의 함정에서 출발한다. 혁명적 실천의 행위자로써 프롤레타리아의 존재는 구조와 행위의 관계에서, 구조가 행위자를 포섭하는데 있어서의 불완전성과 취약성의 문제를 보여준다. 그러나 이러한 구조적 취약성은 루카치에게서 보여지듯 행위에의한 구조의 변혁을 보증하는 것 혹은 그러한 행위자의 의식이 구조 및 대상에 대한 인식의 진리성을 전제하고 있다고 보는 것과는 무관하다.
6. 물론 이러한 질문은 비판적 실재론의 전제로 환원될 수 있다. 다시말해 구조의 취약성은 구조와 행위, 그 각각의 이중성으로 설명될 수 있다. 그러나 지금 우리의 접근과 비판적 실재론 사이에 문제설정의 출발점은 확연히 다르다. 즉, 비판적 실재론은 구조와 실재의 이원론에서 출발하는 반면, 우리는 지금 자본주의라는 생산양식이 프롤레타리아라는 행위자를 포섭하는데서의 구조적 취약성에서 출발한다. 그리고 이것은 이론구성의 결정적 차이를 내포한다.
7. 비판적 실재론의 약점은 이것이 가장 속류화된 구조주의와 방법론적 개인주의의 결합, 양자의 전제를 동시에 취하고 있다는데 있다. 계급의 구성은 구조의 작용이다. 비판적 실재론은 이러한 계급적 행위의 자율성과 구조의 변혁 가능성을 구조주의의 속박에서 구하기위해 구조로 환원될 수 없는 "개인적 실존"의 영역을 삽입한다. 그러나 구조와 행위 사이에 환원될 수 없는 각각의 영역이 존재한다는 비판적 실재론의 전제를 빌면, 계급적 행위의 자율성은 결코 개인적 실존으로 환원될 수 없다. 즉, 비판적 실재론이 삽입한, 구조주의로 환원될 수 없는 "개인적 실존"의 영역은 결코 구조로부터만이 해명될 수 있는 계급적 실존, 그것의 구조에 대한 역작용을 결코 해명할 수 없다.
8. 이러한 이론적 구성의 한계점은 논의와 이론 구성의 출발점에 존재한다. 즉, 구조와 행위라는 실재론의 문제설정, 혹은 다른 맥락에서 인식과 실체라는 인식론의 문제설정은 맑스의 제3테제에서의 지적처럼 "순전히 스콜라적 사변"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는 구조적 전체, 하나의 생산양식으로써의 자본주의가 프롤레타리아를 착취에 순응시키는데서 발생하는 그 포섭의 취약성, 이러한 취약성으로부터 프롤레타리아가 혁명적 실천을 구성하고자하는 주체로써 존재한다는 우리의 현실에서 출발한다. 그러나 이것은 루카치의 프롤레타리아 계급의식을 철학적 전제로 수용하는 것과는 확연히 다른 출발점이다. 따라서 맑스주의에서 이론적 출발점은 구조와 행위의 철학적 실재론에 기반한 역사적 유물론이 아니며 또한 "자본"을 대상으로 바라보는 프롤레타리아, 그 계급의식 역시 아니다. 프롤레타리아의 존재와 그 저항이 부여하는 주체성, 그로인한 프롤레타리아의 인식 대상으로써 자본의 운동을 자본의 주체적 운동으로, 그 내적 연관과 모순으로 객관화시킨 순수 자본의 분석, "자본론"이어야 한다.
9. 우리가 맑스주의의 이론적 구성을 "역사적 유물론"이 아니라 "자본론"에서 출발할 경우 역사 유물론의 난점은 전혀 다른 각도에서 해석 가능하게 된다. 즉, 구조와 행위 사이의 동태적 운동과 다이나믹, 혹은 행위의 제약적 전제로써의 구조를 인정함과 동시에 행위가 구조를 변혁하는 이중성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의 문제는 구조와 행위 사이의 실재론적 질문이 아니다. 구조란 추상적 수준에서 자본의 순수한 운동이 역사적 시공간에서 운동하는데서 발생하는 "포섭의 구성, 그 포섭된 심급들의 중층적 형태"를 의미한다. 따라서 구조의 존재 자체는 맑스가 자본론에서 추상적 수준에서 고찰하고 객관화한 자본이 자본주의라는 그 사회 자체와 동일할 수 없다는 양자의 불일치성을 보여준다. 따라서 "자본론"에서 발견되는 "자본의 논리"는 그 자체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자본의 논리를 현실화하기위해 자신의 외부를 포섭해야하는 "자본의 전략"으로써 실재하며 이러한 전략이 포섭의 대상인 다양한 심급들과 무엇보다도 자신의 착취의 대상인 프롤레타리아를 어떻게 포섭하고 있는가와 함께 각각의 심급들은 이러한 포섭에 어떻게 이완되어 있고 무엇보다도 프롤레타리아는 이러한 포섭에 어떻게 저항하고 있는가, 다시말해 자본의 전략과 함께 프롤레타리아의 저항과 전략을 동시에 고려할 때만이 축적체제의 역사적 형태의 고찰이 가능하게 된다.
10. 우리는 맑스주의 이론들의 관계들, 특히 역사적 유물론과 자본론의 관계를 지금까지의 맑스주의적 해석을 뒤집어 바라보는 것 - 역사적 유물론을 역사의 보편적 방법론으로써 자본론은 이를 특수한 역사적 공간에 투영한 것 이라는 해석을 뒤집는 것, 즉 우리의 이론적 주체로써의 프롤레타리아 계급이 자기 계급의 구성적 주체인 체제를 대상으로써 바라보는 것, 이를 통해 자본을 객관적 운동의 주체로써, 그 내적 운동의 주체로써 자본을 이해하는 것, 그리고 그 운동이 역사적 시공간의 운동과정에서 창출한 포섭의 약점들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파악하고 변혁의 대상인 체제를 자본의 전략으로 바라보는 것. 이러한 접근은 계급의 혁명적 운동을 구조와 행위의 이중성이라는 실재론의 사변적 질문으로부터 설명할 필요를 지니지 않는다. 우리는 구조와 행위 각각의 이중성이 아니라 구조가 행위를 포섭하는 취약성으로써 문제설정을 뒤집음으로써 사변적 방법론들을 혁명적 실천의 영역으로 복귀시킨다.
2. 이러한 비판적 실재론이 역사 유물론의 방법론적 전제로써 접근되는 한 Chodos (Historical Materialism, 3(1), 1998)에게서 발견되듯이 비판적 실재론이 맑스주의 조직론의 이론적 전제로까지 확대되는 것은 불가피하다. 이에대한 Joseph (ibid.)의 비판, '비판적 실재론이 거대한 기획으로 변질되어 맑스주의 영역 내부에서 확장됨으로써 맑스주의 자체를 잠식했다'는 비판은 따라서 비판적 실재론이 아니라 역사 유물론의 기획 자체에 대한 질문으로 수용할 필요가 있다.
3. Bhascar는 구조와 행위의 관계를 각각의 이중성(Duality)을 통해 설명한다. 즉, 구조란 행위하는 인간을 통해, 그 활동을 통해 존재하며, 동시에 그러한 활동을 강제하고 가능하게 만든다. Bhascar는 이를 구조의 이중성이라 정의한다. 다른 한편, 행위의 이중성이란 공통의 혹은 보편의 행위로 환원될 수 없는 개인적 차원의 현존과 다른 한편 이러한 개인성이 사회적 맥락 속에서 구성된다는 이중성을 의미한다. 이러한 구조와 행위의 각각의 이중성(Dualism)은 구조와 행위의 관계에서 서로 환원될 수 없는 독립적 영역을 지님과 동시에 "행위를 결정하는 구조의 우선성"이라는 맑스주의 유물론적 전제와 함께 "행위에 의해 변혁되는 구조"라는 동태적 운동의 가능성과 전략의 필요성, 이 양자를 모두 충족시키는 것으로 보인다.
4. 이러한 비판적 실재론의 설명은 그 기능적 유용성과 무관하게 철학적 이원론의 형태를 취한다. "서로에게로 환원될 수 없는" 각각의 실재론적 전제, 즉 이원론을 전제로 양자의 상호 연관에 의한 다이나믹과 구조 변동의 가능성을 고찰하는 것은 분명 유익하다. 그러나 맑스가 "포이에르바하에 관한 테제"에서 근대철학의 인식론적 문제설정과 틀을 넘어서는데 있어 '실천 혹은 행위'의 의미를 강조한 것은 인식과 대상의 각각의 실체를 인정하고 양자 사이의 관계설정을 재구성한 것이 아니라 인식론적 문제 설정 자체를 해체한 것임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즉, 맑스에게있어 "실천"이란 인식과 실체의 관계설정이라는 철학적 의미에 앞서 "변혁"이라는 원초적 문제에 근거한다. 제 4테제에서 "환경의 변화와 인간 활동의 변화 혹은 자기 변화와의 일치는 오직 혁명적 실천으로서만 파악될 수 있고 합리적으로 이해될 수 있다 (The coincidence of the changing of circumstances and of human activity or self-change can be conceived and rationally understood only as revolutionary practice)에서 의미하는 것은 이를통해 의식과 실체 사이의 양자의 구성적 전제로써의 실천을 의미하기에 앞서 혁명적 실천을 전제해야하는 계급의 존재, 그 계급의 요구 혹은 계급의 목적으로써 혁명적 실천의 존재이다.
5. 프롤레타리아의 존재, 그 계급의식의 존재로부터 철학적 진리의 기반을 확보하는 루카치는 질문을 전제로써 활용했다는 점에서 근본적으로 오류이며, 그 자체로써 철학적 주의주의(Voluntarism)의 함정에서 출발한다. 혁명적 실천의 행위자로써 프롤레타리아의 존재는 구조와 행위의 관계에서, 구조가 행위자를 포섭하는데 있어서의 불완전성과 취약성의 문제를 보여준다. 그러나 이러한 구조적 취약성은 루카치에게서 보여지듯 행위에의한 구조의 변혁을 보증하는 것 혹은 그러한 행위자의 의식이 구조 및 대상에 대한 인식의 진리성을 전제하고 있다고 보는 것과는 무관하다.
6. 물론 이러한 질문은 비판적 실재론의 전제로 환원될 수 있다. 다시말해 구조의 취약성은 구조와 행위, 그 각각의 이중성으로 설명될 수 있다. 그러나 지금 우리의 접근과 비판적 실재론 사이에 문제설정의 출발점은 확연히 다르다. 즉, 비판적 실재론은 구조와 실재의 이원론에서 출발하는 반면, 우리는 지금 자본주의라는 생산양식이 프롤레타리아라는 행위자를 포섭하는데서의 구조적 취약성에서 출발한다. 그리고 이것은 이론구성의 결정적 차이를 내포한다.
7. 비판적 실재론의 약점은 이것이 가장 속류화된 구조주의와 방법론적 개인주의의 결합, 양자의 전제를 동시에 취하고 있다는데 있다. 계급의 구성은 구조의 작용이다. 비판적 실재론은 이러한 계급적 행위의 자율성과 구조의 변혁 가능성을 구조주의의 속박에서 구하기위해 구조로 환원될 수 없는 "개인적 실존"의 영역을 삽입한다. 그러나 구조와 행위 사이에 환원될 수 없는 각각의 영역이 존재한다는 비판적 실재론의 전제를 빌면, 계급적 행위의 자율성은 결코 개인적 실존으로 환원될 수 없다. 즉, 비판적 실재론이 삽입한, 구조주의로 환원될 수 없는 "개인적 실존"의 영역은 결코 구조로부터만이 해명될 수 있는 계급적 실존, 그것의 구조에 대한 역작용을 결코 해명할 수 없다.
8. 이러한 이론적 구성의 한계점은 논의와 이론 구성의 출발점에 존재한다. 즉, 구조와 행위라는 실재론의 문제설정, 혹은 다른 맥락에서 인식과 실체라는 인식론의 문제설정은 맑스의 제3테제에서의 지적처럼 "순전히 스콜라적 사변"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는 구조적 전체, 하나의 생산양식으로써의 자본주의가 프롤레타리아를 착취에 순응시키는데서 발생하는 그 포섭의 취약성, 이러한 취약성으로부터 프롤레타리아가 혁명적 실천을 구성하고자하는 주체로써 존재한다는 우리의 현실에서 출발한다. 그러나 이것은 루카치의 프롤레타리아 계급의식을 철학적 전제로 수용하는 것과는 확연히 다른 출발점이다. 따라서 맑스주의에서 이론적 출발점은 구조와 행위의 철학적 실재론에 기반한 역사적 유물론이 아니며 또한 "자본"을 대상으로 바라보는 프롤레타리아, 그 계급의식 역시 아니다. 프롤레타리아의 존재와 그 저항이 부여하는 주체성, 그로인한 프롤레타리아의 인식 대상으로써 자본의 운동을 자본의 주체적 운동으로, 그 내적 연관과 모순으로 객관화시킨 순수 자본의 분석, "자본론"이어야 한다.
9. 우리가 맑스주의의 이론적 구성을 "역사적 유물론"이 아니라 "자본론"에서 출발할 경우 역사 유물론의 난점은 전혀 다른 각도에서 해석 가능하게 된다. 즉, 구조와 행위 사이의 동태적 운동과 다이나믹, 혹은 행위의 제약적 전제로써의 구조를 인정함과 동시에 행위가 구조를 변혁하는 이중성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의 문제는 구조와 행위 사이의 실재론적 질문이 아니다. 구조란 추상적 수준에서 자본의 순수한 운동이 역사적 시공간에서 운동하는데서 발생하는 "포섭의 구성, 그 포섭된 심급들의 중층적 형태"를 의미한다. 따라서 구조의 존재 자체는 맑스가 자본론에서 추상적 수준에서 고찰하고 객관화한 자본이 자본주의라는 그 사회 자체와 동일할 수 없다는 양자의 불일치성을 보여준다. 따라서 "자본론"에서 발견되는 "자본의 논리"는 그 자체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자본의 논리를 현실화하기위해 자신의 외부를 포섭해야하는 "자본의 전략"으로써 실재하며 이러한 전략이 포섭의 대상인 다양한 심급들과 무엇보다도 자신의 착취의 대상인 프롤레타리아를 어떻게 포섭하고 있는가와 함께 각각의 심급들은 이러한 포섭에 어떻게 이완되어 있고 무엇보다도 프롤레타리아는 이러한 포섭에 어떻게 저항하고 있는가, 다시말해 자본의 전략과 함께 프롤레타리아의 저항과 전략을 동시에 고려할 때만이 축적체제의 역사적 형태의 고찰이 가능하게 된다.
10. 우리는 맑스주의 이론들의 관계들, 특히 역사적 유물론과 자본론의 관계를 지금까지의 맑스주의적 해석을 뒤집어 바라보는 것 - 역사적 유물론을 역사의 보편적 방법론으로써 자본론은 이를 특수한 역사적 공간에 투영한 것 이라는 해석을 뒤집는 것, 즉 우리의 이론적 주체로써의 프롤레타리아 계급이 자기 계급의 구성적 주체인 체제를 대상으로써 바라보는 것, 이를 통해 자본을 객관적 운동의 주체로써, 그 내적 운동의 주체로써 자본을 이해하는 것, 그리고 그 운동이 역사적 시공간의 운동과정에서 창출한 포섭의 약점들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파악하고 변혁의 대상인 체제를 자본의 전략으로 바라보는 것. 이러한 접근은 계급의 혁명적 운동을 구조와 행위의 이중성이라는 실재론의 사변적 질문으로부터 설명할 필요를 지니지 않는다. 우리는 구조와 행위 각각의 이중성이 아니라 구조가 행위를 포섭하는 취약성으로써 문제설정을 뒤집음으로써 사변적 방법론들을 혁명적 실천의 영역으로 복귀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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